Chapter 11

무역과 경상수지

"경상수지 사상 최대 흑자." 나라가 1년 동안 1,230억 달러를 벌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숫자는 물건을 판 돈, 여행과 특허료로 오간 돈, 해외에서 받은 배당, 해외로 보낸 송금이 한 장부에 모인 결과다. 이 장은 나라끼리 왜 사고파는지에서 시작해, 그 거래가 기록되는 장부를 읽고, 반도체 한 품목과 관세 한 줄이 장부를 얼마나 흔드는지 움직여 본다.

2025년 경상수지 1,230.5억 달러 흑자, 사상 최대지우의 헤드라인 노트 · 2026년 2월 · 근거: 한국은행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2026-02-06)

나라는 왜 사고파는가: 비교우위

지우의 회사는 밀을 미국과 호주에서 사 온다. 한국에서도 밀을 기를 수는 있다. 그런데 왜 사 오는가. 가장 쉬운 답은 "외국이 더 싸게 만들어서"다. 하지만 이 답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역이 많다. 한국이 반도체도 옷도 다른 나라보다 더 잘 만든다면, 한국은 아무것도 사 올 필요가 없을까.

200년 전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그래도 무역이 이득이라고 보였다. 열쇠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반도체 한 개를 더 만들려면 옷을 몇 벌 포기해야 하는가. 이 포기의 크기가 더 작은 나라가 그 물건에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를 가진다. 모든 물건을 더 잘 만드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를 가진 나라도, 모든 물건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는 없다. 기회비용은 서로의 역수이기 때문이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한국과 가상의 B국은 각각 노동자 100명으로 반도체와 옷을 만든다. 처음 값에서 한국은 두 물건 모두 B국보다 잘 만든다. 그래프 아래의 손잡이를 끌어 두 나라가 거래하는 가격(반도체 1개 = 옷 몇 벌)을 정해 본다.

SIMULATOR

비교우위: 교역 가격을 끌어 두 나라의 몫을 정한다

아래 가격 막대의 손잡이를 끈다
교역 가격(반도체 1개)—
이득이 나는 가격 범위—
한국의 소비 증가—
B국의 소비 증가—
해볼 것: ① 처음 값에서 한국은 1명이 반도체 4개 또는 옷 3벌, B국은 반도체 1개 또는 옷 2벌을 만든다. 한국이 둘 다 잘 만든다. 그래도 가격을 1.2벌쯤에 두면 두 나라의 점선(교역으로 닿을 수 있는 선)이 모두 실선(혼자 만들 수 있는 한계) 바깥으로 나간다. ② 가격 손잡이를 범위 밖으로 끈다. 한쪽 나라의 점선이 실선 안으로 들어가 손해가 난다. 그 나라는 거래하지 않는다. ③ 한국의 옷 생산성을 8로 올려 두 나라의 기회비용을 같게 만든다(B국 반도체 1 기준). 범위가 0이 되어 교역의 이득이 사라진다. 이득은 '잘 만드는가'가 아니라 '포기하는 크기가 다른가'에서 나온다. (리카도 모형: 노동 하나, 생산성 고정, 운송비 없음, 각 나라는 소득의 절반씩을 두 물건에 쓴다고 가정. 교육용.)

그래프의 실선은 생산가능곡선(PPF, Production possibility frontier)이다. 혼자서는 이 선 안에서만 소비할 수 있다. 각 나라가 비교우위가 있는 물건에 집중하고 바꾸면, 두 나라 모두 선 밖의 점에 닿는다. 가격이 한국의 기회비용(반도체 1개 = 옷 0.75벌)과 B국의 기회비용(옷 2벌) 사이에 있을 때만 그렇다. 그 범위 안에서 가격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이득이 어느 쪽으로 더 가는지가 갈린다. 이것이 뒤에 나올 교역조건이다.

현실의 무역은 이 그림보다 복잡하다. 자본과 기술, 규모의 경제, 운송비, 그리고 교역으로 손해를 보는 산업과 사람이 있다. 리카도 모형이 말하는 것은 나라 전체의 소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것이 아니다.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 대부분은 이 차이, 곧 커진 몫을 누가 얼마나 가져가느냐에서 나온다.

경상수지 네 갈래

나라와 바깥 세계가 주고받은 돈은 국제수지표(Balance of payments)라는 장부에 적힌다. 그중 물건·서비스·소득이 오간 부분이 경상수지(Current account)다.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국제수지 매뉴얼에 따라 매달 집계하며, 네 갈래로 나뉜다.

경상수지 +1,230.5 상품수지+1,380.7 서비스수지−345.2 본원소득수지+279.2 이전소득수지−84.2 수출 − 수입(물건) 여행·운송·특허료·컨설팅 배당·이자·해외 근로 급여 대가 없는 송금·국제기구 분담금 단위: 억 달러, 2025년(잠정). 출처: 한국은행 ECOS 「국제수지」 원표(2026-10-09 조회). 근거: 한국은행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 인용 보도
그림 1. 2025년 경상수지의 네 갈래. 흑자의 대부분은 상품수지(반도체 등 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에서 나왔다. 서비스수지는 여행과 지식재산권 사용료 지급으로 적자였고, 본원소득수지는 해외 주식·채권에서 받은 배당과 이자로 흑자였다. 네 갈래 모두 한국은행 ECOS 「국제수지」 원표(2026-10-09 조회)와 같다(상품 1,380.7억, 서비스 −345.2억, 본원소득 279.2억, 이전소득 −84.2억 달러).

헤드라인의 1,230.5억 달러는 2024년(999.7억 달러)보다 23.1% 늘었고, 종전 최대였던 2015년(1,051.2억 달러)을 넘었다 (한국은행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 2026-02-06). 보도들은 반도체 수출 호조를 첫 이유로, 국제 유가 하락과 해외 투자에서 들어온 소득을 다음 이유로 들었다. 아래 막대의 끝을 끌어 각 갈래를 바꿔 보며 합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다.

SIMULATOR

경상수지 장부: 네 갈래의 막대를 끌어 합계를 바꾼다

막대 끝의 손잡이를 위아래로 끈다
경상수지—
2025년 실제 대비—
상품수지가 메운 몫—
한 줄 풀이—
해볼 것: ① 서비스수지를 −500억 달러로 끌어내린다. 해외여행이 크게 늘어난 해다. 상품에서 번 돈의 3분의 1이 넘게 빠져나간다. ② 본원소득수지를 500억 달러로 올린다. 국민연금과 개인의 해외 투자가 커지면 배당과 이자로 경상수지가 받쳐진다. 수출이 아니라 '해외 자산'이 버는 흑자다. ③ 상품수지를 300억 달러로 내린다. 반도체 값이 꺾이고 유가가 오른 해를 떠올린다. 다른 갈래가 그대로여도 경상수지는 적자 근처로 간다. ④ 아래 단추로 2025년 값으로 되돌린다. (처음 값: 2025년 잠정치. 이전소득수지는 계산값. 막대 높이를 바꾸는 것은 교육용 조작이다.)

막대를 움직여 보면 한국의 경상수지는 사실상 상품수지 한 갈래가 끌고 간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최근에는 본원소득수지의 무게가 커지고 있다. 한국인이 해외에 가진 주식과 채권이 늘어 배당과 이자가 해마다 더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국인이 가진 한국 주식이 많아 반도체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배당을 늘리면 그만큼은 해외로 나간다. 같은 반도체 호황이 상품수지를 키우고 본원소득수지는 조금 깎는다.

국제수지 수출과 통관 수출은 다른 숫자다매달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하는 「수출입 동향」은 세관을 통과한 물건을 집계한 통관 기준이다(2025년 수출은 2026-01-01 발표 때 7,097억 달러, 이후 산업통상부 자료에서 7,093억 달러). 한국은행의 국제수지는 소유권이 넘어간 시점을 기준으로 집계해,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 바로 파는 가공·중계무역을 넣고 운임·보험료 처리 방식도 다르다. 그래서 2025년 국제수지 기준 상품 수출은 7,189.4억 달러로 통관 기준과 다르다. 국제수지는 보통 두 달 뒤 초순(예: 8월분은 10월 8일)에 「○월 국제수지(잠정)」로 나오고, 나중에 수정된다. 원표는 한국은행 ECOS의 '국제수지' 항목에 있다. 기사에서 "수출"을 보면 어느 기준인지부터 확인한다.

수출 +83.5%를 다시 계산하기

2026년 9월 수출은 1,209.4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3.5% 늘었다. 월간 수출로 처음 1,200억 달러를 넘었고, 반도체가 603억 달러(+262.8%)로 전체의 49.9%였다 (산업통상부 「2026년 9월 수출입 동향」, 2026-10-01). 반도체를 뺀 나머지 품목도 23% 늘었다. 숫자가 너무 커서 백정호는 같은 질문을 세 번 했다. 무엇과 비교했나, 값이 올랐나 양이 늘었나, 일한 날은 같았나.

첫째, 기저효과(Base effect)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분모가 작으면 커진다. 1,209.4 ÷ 1.835를 거꾸로 계산하면 2025년 9월 수출은 약 659억 달러다. 2025년 9월이 특별히 낮은 달이 아니었다면, 이번 증가율은 분모 탓만은 아니다. 둘째, 가격과 물량이다. 수출액 = 단가 × 물량이므로 증가율도 둘로 나뉜다. 보도자료는 반도체 증가의 이유로 메모리 수요 증가, 수출 물량 확대, 고정거래가격 상승을 함께 들었다. 셋째, 조업일수다. 2026년 9월은 추석 연휴가 들어 있어 일한 날이 적었다. 하루 평균 수출은 56.3억 달러로 105% 늘었다고 발표되었는데, 이 값과 총액에서 거꾸로 계산하면 조업일수는 1년 전보다 2.5일쯤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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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율 분해: 기저·단가·물량·조업일수

올해 수출 · 증가율—
하루 평균 증가율—
반도체 비중—
내년 같은 달이 올해와 같으면—
해볼 것: ① 처음 값은 2026년 9월에 맞췄다(합계 약 1,209억 달러, +83%). 단가와 물량을 나눈 값(+150%, +45%)은 공식 발표가 아닌 교육용 가정이다. 단가를 0%로 내리면 증가율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본다. 같은 물량이라도 값이 오른 해의 증가율은 부풀어 보인다. ② 작년 같은 달 수출을 500억 달러로 낮춘다. 올해 숫자는 그대로인데 증가율이 140%를 넘는다. 기저효과다. ③ '조업일수 같음'을 누른다. 총액 증가율은 그대로지만 하루 평균 증가율이 크게 낮아진다. 일한 날이 적었던 달의 총액 증가율은 오히려 실력을 덜 보여 준다. 오른쪽 아래 숫자는 내년의 함정이다. 올해 같은 달의 높은 숫자가 내년의 분모가 된다. (2025년 9월 반도체 수출은 603 ÷ 3.628 ≈ 166억 달러, 그 밖의 품목은 약 493억 달러로 계산했다. 반도체 외 품목은 +23%로 고정.)

단가를 0으로 내려 보면, 2026년 9월의 증가율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반도체 값에서 나왔다는 가정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보인다. 단가와 물량의 실제 몫은 한국은행의 「수출입물가지수」와 관세청의 품목별 물량 자료를 맞대어 보아야 알 수 있다. 하나 더. 올해의 기록적인 숫자는 내년 같은 달의 분모가 된다. 2027년 9월 수출이 올해와 똑같아도 증가율은 0%이고, 조금만 줄어도 "수출 감소 전환"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사상 최대"라는 말의 세 가지 함정백정호는 "사상 최대"를 보면 세 가지를 따로 확인하라고 했다. 첫째, 달러 기준이다. 수출과 경상수지는 달러로 집계되므로 물가와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커진다. 경제 크기와 견주려면 GDP 대비 비율을 본다. 둘째, 어느 장부인가. 통관 기준 수출과 국제수지 기준 상품 수출은 같은 달에도 다르다. 셋째, 왜 최대인가. 수출이 늘어서인지, 수입이 줄어서인지(유가 하락 같은) 따로 본다. 수입이 줄어 생긴 흑자는 경기가 약하다는 신호일 때도 있다. 경상수지 흑자를 "나라가 번 돈"이라고만 쓰면 이 세 가지가 모두 빠진다.

반도체 비중 49.9%: 쏠림의 위험

2025년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통관 수출 7,093억 달러의 약 24%였다(이 책이 계산한 비중) (산업통상부 「2025년 연간 수출입 동향」·2026-01-01, 연간 수출은 「2026년 9월 수출입 동향」·2026-10-01의 수정값). 2026년 9월에는 한 달 수출의 49.9%가 반도체였다. 반도체 값이 오를 때는 이 쏠림이 수출 전체를 끌어올린다. 반대로 값이 꺾이면 같은 힘이 반대로 작용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몇 해 주기로 값이 크게 오르내리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계산은 단순하다. 전체 수출 변화율은 품목별 변화율을 비중으로 가중평균한 것이다.

$$g_{\text{전체}} = s \cdot g_{\text{반도체}} + (1 - s) \cdot g_{\text{기타}}$$
\(s\): 반도체 비중, \(g\): 각 품목의 수출 증가율. 비중이 클수록 한 품목의 등락이 전체를 크게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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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품목의 무게: 반도체가 꺾이면 수출 전체는

전체 수출 변화—
반도체가 만든 몫—
비중 24%였다면—
해볼 것: ① 반도체 비중 49.9%에서 반도체 수출이 30% 줄면, 다른 품목이 3% 늘어도 전체는 13% 넘게 준다. ② 비중을 24%(2025년 연간 수준)로 내린다. 같은 반도체 충격이 전체 수출에는 절반 아래로 줄어든다. ③ 반도체 변화를 −60%로 내리고 비중을 70%로 올린다. 선이 가파르게 꺾여 수출 전체가 40% 넘게 줄어든다. 한 품목에 기대는 경제의 무너지는 모습이다. (가중평균 공식만 쓴 계산이다. 반도체 경기가 다른 품목 수요에 주는 영향은 넣지 않았다. 충격 크기는 교육용 숫자다.)

쏠림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비교우위의 결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변동성이다. 한 품목의 값이 수출, 경상수지, 기업 이익, 세수, 주가를 함께 흔든다. 코스피에서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커서, 반도체 경기가 지수 전체를 흔든다는 분석도 자주 나온다.

교역조건: 같은 물건을 팔고 얼마나 사 오나

수출이 늘어도 나라가 더 부유해졌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반도체 한 개를 팔아 원유를 몇 배럴 사 올 수 있느냐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라고 한다.

$$\text{순상품교역조건} = \frac{\text{수출물가지수}}{\text{수입물가지수}} \times 100$$
한국은행이 매달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으로 발표한다. 값이 오르면 같은 양을 수출해 더 많이 수입할 수 있다. 여기에 수출 물량까지 곱한 것이 소득교역조건이다.

한국은 원유와 가스를 거의 전부 수입하고 반도체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서, 교역조건이 두 가격에 크게 좌우된다. 반도체 값이 오르고 유가가 내리면 교역조건이 좋아져 같은 땀으로 더 많은 것을 사 온다. 반도체 값이 내리고 유가가 오르면 반대다. 이 차이는 GDP 성장률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생산한 양(실질 GDP)이 같아도 그 생산물로 살 수 있는 것의 양이 바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실질 GDP와 별도로 실질 국내총소득(실질 GDI)을 발표하는 이유다(3장).

수출물가 +20%, 수입물가 그대로(교육용)교역조건 120
수출물가 그대로, 수입물가 +25%(유가 급등, 교육용)교역조건 80
같은 물량을 수출해 살 수 있는 수입품1.2배 · 0.8배

관세: 누가 내고 누가 잃나

관세(Tariff)는 수입품에 매기는 세금이다. 세계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작은 나라(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가 관세를 매기면, 국내 가격이 세계 가격보다 관세만큼 오른다. 그러면 네 가지가 일어난다. 소비자는 더 비싸게 덜 사고, 국내 생산자는 더 많이 만들어 더 비싸게 팔고, 정부는 관세 수입을 얻고, 그 어느 쪽에도 가지 않고 사라지는 손실이 남는다. 이 마지막 것이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이다. 2장의 세금 그래프와 같은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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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의 수입 관세: 가격·물량·관세 수입·사중손실

국내 가격선을 위아래로 끌어 관세를 정한다
국내 가격—
수입량(관세 전 → 후)—
관세 수입—
사중손실—
해볼 것: ① 관세 10에서 국내 가격선을 위로 끈다. 파란 사각형(관세 수입)은 처음에 커지다가 줄어들고, 빨간 삼각형 둘(사중손실)은 관세의 제곱에 가깝게 커진다. ② 관세를 25로 올린다. 국내 가격이 자급할 때의 가격(55)에 닿아 수입이 0이 된다. 관세 수입도 0이다. 보호는 완전해졌지만 정부는 한 푼도 걷지 못하고 손실만 남는다. 이런 관세를 금지적 관세라고 부른다. ③ 세계 가격을 낮춘다. 같은 관세라도 수입이 많을수록 관세 수입과 손실이 함께 커진다. (국내 수요 P = 100 − Q, 국내 공급 P = 10 + Q, 단위는 교육용. 이 나라가 사는 양은 세계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가정. 관세를 매기면 상대국이 보복하는 효과는 넣지 않았다.)

그래프의 색 영역을 더해 보면 소비자가 잃은 것은 생산자가 얻은 것과 정부가 걷은 것을 합친 것보다 크다. 그 차이가 사중손실이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는 관세가 나라 전체의 후생을 줄인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관세를 옹호하는 쪽은 다른 근거를 든다. 안보에 중요한 산업을 지키는 것, 갓 시작한 산업이 클 시간을 버는 것, 상대국의 불공정한 보조금에 대응하는 것, 일자리가 한 지역에 몰려 사라지는 충격을 늦추는 것이다. 이 근거들은 전체 후생의 크기보다 그것이 누구에게,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앞의 그래프와 다른 질문에 답한다.

큰 나라는 사정이 또 다르다. 미국처럼 수입 규모가 큰 나라가 관세를 매기면 수입이 줄어 세계 가격이 내려가고, 관세의 일부를 수출국이 떠안는다. 2025년 이후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고, 한·미 협상을 거쳐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가 15% 수준으로 정리되었다. 2026년 2월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냈고, 미국 정부가 다른 법 조항으로 관세를 다시 매기면서 세율과 근거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관련 보도: 한국경제·뉴시스 2026-02-21~22, 헤럴드경제 2026-07-23). 관세가 한국 수출과 미국 소비자 가격에 준 영향의 크기는 연구와 시기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므로 이 책은 판단하지 않는다.

저축과 투자: S − I = CA

경상수지는 무역 장부이면서 나라 전체의 가계부이기도 하다. 3장의 지출 쪽 GDP 식에서 출발한다.

$$Y = C + I + G + (X - M) \quad\Longrightarrow\quad \underbrace{(Y - C - G)}_{\text{국민저축 } S} - I = X - M$$
\(Y\): 소득(GDP), \(C\): 민간소비, \(I\): 투자, \(G\): 정부소비, \(X - M\): 순수출. 해외에서 들어온 소득(본원·이전소득)까지 넣으면 오른쪽이 경상수지(CA)가 된다. 이 등식은 이론이 아니라 회계상 항상 성립하는 항등식이다.

뜻은 이렇다. 나라 전체가 번 것보다 덜 쓰면(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남는 몫은 결국 해외로 나간다. 물건으로 팔고 받은 달러로 해외 자산을 산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국은 해외 자산이 쌓이는 나라이고, 적자국은 해외에서 빌리거나 자산을 파는 나라다. 2025년의 흑자 1,230.5억 달러는 2025년 연평균 환율(1,421.97원)로 바꾸면 약 175조원으로, 명목 GDP 약 2,677조원의 6.5% 남짓이다(이 책이 계산한 값).

국민저축 S 가계·기업·정부가 쓰고 남긴 소득 국내 투자 I 경상수지 흑자 S − I 해외 자산 증가 해외 주식·채권·직접투자· 외환보유액 남는 몫 거꾸로 S가 I보다 작으면 경상수지 적자, 해외에서 빌린다
그림 2. 저축과 투자의 차이가 경상수지다. 위 칸의 녹색(저축) 가운데 남색(국내 투자)으로 쓰이지 않은 몫이 해외로 나간다. 같은 흑자도 "저축이 늘어서"인지 "국내 투자가 줄어서"인지에 따라 뜻이 다르다.

이 항등식은 기사를 읽을 때 유용한 질문을 준다. 경상수지 흑자가 늘었다면 저축이 늘었나, 투자가 줄었나. 국내 투자가 부진해서 생긴 흑자라면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또 무역 적자를 관세로 줄이려는 정책이 왜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는지도 여기서 보인다. 수입이 줄어도 그 나라의 저축과 투자가 그대로라면, 환율이나 다른 수입품, 수출이 움직여 결국 같은 크기의 적자로 돌아오기 쉽다. 다만 이것은 회계의 관계이지 인과의 방향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저축과 투자가 거꾸로 무역의 변화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판

이제 장부의 네 갈래를 움직이는 힘들을 한 판에 올린다. 처음 값은 2025년이다. 반도체 가격과 세계 수요는 수출을, 유가는 수입을, 환율은 수출입과 해외여행을, 해외 배당과 이자는 본원소득을 바꾼다. 막대의 흐린 테두리는 2025년 실제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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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판: 반도체·세계 수요·환율·유가·해외 배당

경상수지(연간)—
GDP 대비—
교역조건(2025 = 100)—
수출 · 수입—
해볼 것: ① 반도체 가격을 +150%로 올린다. 상품수지가 두 배 넘게 커져 경상수지가 3,000억 달러를 넘는다. 2026년 1~8월 누적 흑자가 이미 2,792억 달러였다는 발표와 견주어 본다. 교역조건도 크게 좋아진다. ② 반도체 가격을 −50%, 유가를 150달러, 세계 수요를 −15%로 둔다. 상품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경상수지 전체가 적자가 된다. 해외 배당을 최대로 올려도 메우지 못한다. 반도체와 유가 두 가격에 매달린 장부의 무너지는 모습이다. ③ 모든 값을 2025년으로 두고 환율만 1,700원으로 올린다. 원화가 약해지면 해외여행이 줄고 수입이 줄어 흑자가 커지지만, 반도체 가격 하나를 움직인 것보다 훨씬 작다. (2025년 국제수지 기준 수출 7,189.4억·수입 5,808.7억 달러에서 출발. 반도체 비중 24%, 수입 가운데 에너지 25%, 수요·환율 탄력성, 유가 기준 70달러는 교육용 가정이다. GDP 대비는 2025년 명목 GDP를 그 환율로 바꾼 값. 전망이 아니다.)

판을 돌려 보면 한국 경상수지의 두 축이 드러난다. 하나는 반도체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유가다. 둘 다 한국이 정하지 못하는 세계 시장의 가격이다. 환율은 생각보다 작은 손잡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조금 늘고 수입과 해외여행이 줄지만, 그 효과는 몇 분기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고 크기도 작다. 반대로 경상수지가 환율을 움직이는 힘은 10장에서 본 것처럼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으로 바로 온다.

숫자와 시뮬레이터에 대하여국제수지 수치는 잠정치이며 한국은행이 이후 수정한다. 연간 2025년 숫자도 다음 해 연간 국제수지 공표나 기준 개편 때 바뀔 수 있다. 수출입 동향(통관 기준)과 국제수지(소유권 이전 기준)는 같은 달에도 숫자가 다르다. 이 장의 시뮬레이터 계수(탄력성, 비중)는 방향과 크기의 순서를 보이기 위한 교육용 가정이며, 앞으로의 수출이나 경상수지를 예측하지 않는다.
CASE 지우헤드라인 노트 · 2026년 2월
2025년 경상수지 1,230.5억 달러 흑자, 사상 최대근거: 한국은행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2026-02-06). 2024년 999.7억 달러, 종전 최대 2015년 1,051.2억 달러. 12월 한 달 187억 달러도 월간 최대

"나라가 1,230억 달러를 벌었다는 뜻인가"

2월 아침, 지우는 회사 메신저에 올라온 기사 제목을 노트에 옮겼다. 원료구매팀에게 경상수지는 먼 이야기 같았지만, 흑자가 크면 달러가 많이 들어오고 그러면 원화가 강해져 원료값이 싸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백정호에게 물었더니 대답 대신 질문 세 개가 돌아왔다. "언제 기준이냐, 무엇과 비교했냐, 누가 쟀냐."

지우는 표를 찾아 답을 적었다. 언제: 2025년 1~12월, 잠정치. 무엇과: 2024년(999.7억 달러)보다 23.1% 많고, 종전 최대인 2015년(1,051.2억 달러)보다 많다. 누가: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관 수출(산업통상부)과는 다른 장부다. 그리고 네 갈래를 나눠 보았다. 상품수지 1,380.7억 달러가 흑자를 거의 다 만들었고, 서비스수지는 345.2억 달러 적자, 본원소득수지는 279.2억 달러 흑자였다. 이전소득수지는 기사에서 찾지 못해 합계에서 거꾸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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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이 말한 것2025년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다.
숫자를 다시 보니흑자의 대부분은 반도체가 끈 상품수지였고, 해외 투자에서 받은 배당·이자가 두 번째 기둥이었다. 달러 기준 "사상 최대"는 GDP 대비로 다시 본다. 흑자가 원화를 얼마나 강하게 할지는 이 표만으로 알 수 없다.
내 생활에는—

핵심 정리

  1. 교역의 이득은 절대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기회비용의 차이)에서 나온다. 교역 가격이 두 나라의 기회비용 사이에 있을 때 두 나라 모두 혼자서는 닿지 못하는 소비에 닿는다.
  2. 경상수지는 상품·서비스·본원소득·이전소득 네 갈래다. 2025년 1,230.5억 달러 흑자는 상품수지(1,380.7억)가 끌고 본원소득(279.2억)이 받쳤으며, 서비스는 적자(−345.2억)였다.
  3. 수출 증가율은 기저(작년 숫자), 단가, 물량, 조업일수로 나눠 읽는다. 올해의 기록은 내년의 분모가 된다.
  4. 반도체 비중이 클수록 반도체 값 하나가 수출·경상수지·교역조건을 크게 흔든다. 교역조건은 같은 수출로 얼마나 수입할 수 있는지를 잰다.
  5. 작은 나라의 관세는 국내 가격을 올려 생산자와 정부에 몫을 옮기고 사중손실을 남긴다. 경상수지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S − I = CA)와 언제나 같다.

확인 퀴즈

1. A국은 1명이 쌀 6가마 또는 옷 3벌을, B국은 1명이 쌀 2가마 또는 옷 2벌을 만든다. 옳은 설명은?

A국에서 옷 1벌의 기회비용은 쌀 2가마, B국은 쌀 1가마다. 옷은 B국이, 쌀은 A국이 더 싸게(덜 포기하고) 만든다. 옷 1벌의 가격이 쌀 1가마와 2가마 사이에 있으면 두 나라 모두 이득이다.

2. 한국이 미국 주식에서 받은 배당금은 경상수지의 어느 갈래에 들어가는가?

배당·이자처럼 투자의 대가로 받는 소득과 해외 근로 급여는 본원소득수지에 들어간다. 대가 없이 오가는 송금이나 원조는 이전소득수지, 여행·운송·특허료는 서비스수지다. 주식을 산 돈 자체는 경상수지가 아니라 금융계정에 적힌다.

3. 올해 9월 수출이 1년 전보다 80% 늘었다. 이 숫자를 다시 볼 때 가장 덜 중요한 질문은?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분모(작년), 가격과 물량, 일한 날의 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셋을 나눠 보면 같은 80%가 '실력'인지 '값'인지 '달력'인지 구분할 수 있다.

4. 국민저축이 국내 투자보다 GDP의 5%만큼 많은 나라에 대해 회계상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S − I = CA는 항등식이다.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그 차이만큼 경상수지 흑자가 되고 해외 자산이 쌓인다. 관세가 수입을 줄여도 저축과 투자가 그대로라면 다른 경로(환율, 수출)로 상쇄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