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과 경상수지
"경상수지 사상 최대 흑자." 나라가 1년 동안 1,230억 달러를 벌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숫자는 물건을 판 돈, 여행과 특허료로 오간 돈, 해외에서 받은 배당, 해외로 보낸 송금이 한 장부에 모인 결과다. 이 장은 나라끼리 왜 사고파는지에서 시작해, 그 거래가 기록되는 장부를 읽고, 반도체 한 품목과 관세 한 줄이 장부를 얼마나 흔드는지 움직여 본다.
- 비교우위로 두 나라가 모두 이득을 보는 교역 가격의 범위를 찾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교역이 멈추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 경상수지를 상품·서비스·본원소득·이전소득으로 나눠 읽고, 국제수지 기준 수출과 통관 기준 수출의 차이를 말할 수 있다.
- "수출 +83.5%" 같은 증가율을 기저효과·가격·물량·조업일수로 나눠 다시 계산할 수 있다.
- 교역조건, 관세의 득실, 저축과 투자의 항등식(S − I = CA)으로 무역 기사를 나라 전체의 살림과 연결할 수 있다.
나라는 왜 사고파는가: 비교우위
지우의 회사는 밀을 미국과 호주에서 사 온다. 한국에서도 밀을 기를 수는 있다. 그런데 왜 사 오는가. 가장 쉬운 답은 "외국이 더 싸게 만들어서"다. 하지만 이 답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역이 많다. 한국이 반도체도 옷도 다른 나라보다 더 잘 만든다면, 한국은 아무것도 사 올 필요가 없을까.
200년 전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그래도 무역이 이득이라고 보였다. 열쇠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반도체 한 개를 더 만들려면 옷을 몇 벌 포기해야 하는가. 이 포기의 크기가 더 작은 나라가 그 물건에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를 가진다. 모든 물건을 더 잘 만드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를 가진 나라도, 모든 물건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는 없다. 기회비용은 서로의 역수이기 때문이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한국과 가상의 B국은 각각 노동자 100명으로 반도체와 옷을 만든다. 처음 값에서 한국은 두 물건 모두 B국보다 잘 만든다. 그래프 아래의 손잡이를 끌어 두 나라가 거래하는 가격(반도체 1개 = 옷 몇 벌)을 정해 본다.
비교우위: 교역 가격을 끌어 두 나라의 몫을 정한다
그래프의 실선은 생산가능곡선(PPF, Production possibility frontier)이다. 혼자서는 이 선 안에서만 소비할 수 있다. 각 나라가 비교우위가 있는 물건에 집중하고 바꾸면, 두 나라 모두 선 밖의 점에 닿는다. 가격이 한국의 기회비용(반도체 1개 = 옷 0.75벌)과 B국의 기회비용(옷 2벌) 사이에 있을 때만 그렇다. 그 범위 안에서 가격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이득이 어느 쪽으로 더 가는지가 갈린다. 이것이 뒤에 나올 교역조건이다.
현실의 무역은 이 그림보다 복잡하다. 자본과 기술, 규모의 경제, 운송비, 그리고 교역으로 손해를 보는 산업과 사람이 있다. 리카도 모형이 말하는 것은 나라 전체의 소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지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것이 아니다.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 대부분은 이 차이, 곧 커진 몫을 누가 얼마나 가져가느냐에서 나온다.
경상수지 네 갈래
나라와 바깥 세계가 주고받은 돈은 국제수지표(Balance of payments)라는 장부에 적힌다. 그중 물건·서비스·소득이 오간 부분이 경상수지(Current account)다.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국제수지 매뉴얼에 따라 매달 집계하며, 네 갈래로 나뉜다.
헤드라인의 1,230.5억 달러는 2024년(999.7억 달러)보다 23.1% 늘었고, 종전 최대였던 2015년(1,051.2억 달러)을 넘었다 (한국은행 「2025년 12월 국제수지(잠정)」, 2026-02-06). 보도들은 반도체 수출 호조를 첫 이유로, 국제 유가 하락과 해외 투자에서 들어온 소득을 다음 이유로 들었다. 아래 막대의 끝을 끌어 각 갈래를 바꿔 보며 합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다.
경상수지 장부: 네 갈래의 막대를 끌어 합계를 바꾼다
막대를 움직여 보면 한국의 경상수지는 사실상 상품수지 한 갈래가 끌고 간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최근에는 본원소득수지의 무게가 커지고 있다. 한국인이 해외에 가진 주식과 채권이 늘어 배당과 이자가 해마다 더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외국인이 가진 한국 주식이 많아 반도체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배당을 늘리면 그만큼은 해외로 나간다. 같은 반도체 호황이 상품수지를 키우고 본원소득수지는 조금 깎는다.
수출 +83.5%를 다시 계산하기
2026년 9월 수출은 1,209.4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3.5% 늘었다. 월간 수출로 처음 1,200억 달러를 넘었고, 반도체가 603억 달러(+262.8%)로 전체의 49.9%였다 (산업통상부 「2026년 9월 수출입 동향」, 2026-10-01). 반도체를 뺀 나머지 품목도 23% 늘었다. 숫자가 너무 커서 백정호는 같은 질문을 세 번 했다. 무엇과 비교했나, 값이 올랐나 양이 늘었나, 일한 날은 같았나.
첫째, 기저효과(Base effect)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분모가 작으면 커진다. 1,209.4 ÷ 1.835를 거꾸로 계산하면 2025년 9월 수출은 약 659억 달러다. 2025년 9월이 특별히 낮은 달이 아니었다면, 이번 증가율은 분모 탓만은 아니다. 둘째, 가격과 물량이다. 수출액 = 단가 × 물량이므로 증가율도 둘로 나뉜다. 보도자료는 반도체 증가의 이유로 메모리 수요 증가, 수출 물량 확대, 고정거래가격 상승을 함께 들었다. 셋째, 조업일수다. 2026년 9월은 추석 연휴가 들어 있어 일한 날이 적었다. 하루 평균 수출은 56.3억 달러로 105% 늘었다고 발표되었는데, 이 값과 총액에서 거꾸로 계산하면 조업일수는 1년 전보다 2.5일쯤 적었다.
증가율 분해: 기저·단가·물량·조업일수
단가를 0으로 내려 보면, 2026년 9월의 증가율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반도체 값에서 나왔다는 가정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보인다. 단가와 물량의 실제 몫은 한국은행의 「수출입물가지수」와 관세청의 품목별 물량 자료를 맞대어 보아야 알 수 있다. 하나 더. 올해의 기록적인 숫자는 내년 같은 달의 분모가 된다. 2027년 9월 수출이 올해와 똑같아도 증가율은 0%이고, 조금만 줄어도 "수출 감소 전환"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반도체 비중 49.9%: 쏠림의 위험
2025년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로 통관 수출 7,093억 달러의 약 24%였다(이 책이 계산한 비중) (산업통상부 「2025년 연간 수출입 동향」·2026-01-01, 연간 수출은 「2026년 9월 수출입 동향」·2026-10-01의 수정값). 2026년 9월에는 한 달 수출의 49.9%가 반도체였다. 반도체 값이 오를 때는 이 쏠림이 수출 전체를 끌어올린다. 반대로 값이 꺾이면 같은 힘이 반대로 작용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몇 해 주기로 값이 크게 오르내리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계산은 단순하다. 전체 수출 변화율은 품목별 변화율을 비중으로 가중평균한 것이다.
한 품목의 무게: 반도체가 꺾이면 수출 전체는
쏠림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비교우위의 결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변동성이다. 한 품목의 값이 수출, 경상수지, 기업 이익, 세수, 주가를 함께 흔든다. 코스피에서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커서, 반도체 경기가 지수 전체를 흔든다는 분석도 자주 나온다.
교역조건: 같은 물건을 팔고 얼마나 사 오나
수출이 늘어도 나라가 더 부유해졌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반도체 한 개를 팔아 원유를 몇 배럴 사 올 수 있느냐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것을 교역조건(Terms of trade)이라고 한다.
한국은 원유와 가스를 거의 전부 수입하고 반도체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서, 교역조건이 두 가격에 크게 좌우된다. 반도체 값이 오르고 유가가 내리면 교역조건이 좋아져 같은 땀으로 더 많은 것을 사 온다. 반도체 값이 내리고 유가가 오르면 반대다. 이 차이는 GDP 성장률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생산한 양(실질 GDP)이 같아도 그 생산물로 살 수 있는 것의 양이 바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실질 GDP와 별도로 실질 국내총소득(실질 GDI)을 발표하는 이유다(3장).
관세: 누가 내고 누가 잃나
관세(Tariff)는 수입품에 매기는 세금이다. 세계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작은 나라(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가 관세를 매기면, 국내 가격이 세계 가격보다 관세만큼 오른다. 그러면 네 가지가 일어난다. 소비자는 더 비싸게 덜 사고, 국내 생산자는 더 많이 만들어 더 비싸게 팔고, 정부는 관세 수입을 얻고, 그 어느 쪽에도 가지 않고 사라지는 손실이 남는다. 이 마지막 것이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이다. 2장의 세금 그래프와 같은 원리다.
작은 나라의 수입 관세: 가격·물량·관세 수입·사중손실
그래프의 색 영역을 더해 보면 소비자가 잃은 것은 생산자가 얻은 것과 정부가 걷은 것을 합친 것보다 크다. 그 차이가 사중손실이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는 관세가 나라 전체의 후생을 줄인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관세를 옹호하는 쪽은 다른 근거를 든다. 안보에 중요한 산업을 지키는 것, 갓 시작한 산업이 클 시간을 버는 것, 상대국의 불공정한 보조금에 대응하는 것, 일자리가 한 지역에 몰려 사라지는 충격을 늦추는 것이다. 이 근거들은 전체 후생의 크기보다 그것이 누구에게,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앞의 그래프와 다른 질문에 답한다.
큰 나라는 사정이 또 다르다. 미국처럼 수입 규모가 큰 나라가 관세를 매기면 수입이 줄어 세계 가격이 내려가고, 관세의 일부를 수출국이 떠안는다. 2025년 이후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고, 한·미 협상을 거쳐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가 15% 수준으로 정리되었다. 2026년 2월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냈고, 미국 정부가 다른 법 조항으로 관세를 다시 매기면서 세율과 근거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관련 보도: 한국경제·뉴시스 2026-02-21~22, 헤럴드경제 2026-07-23). 관세가 한국 수출과 미국 소비자 가격에 준 영향의 크기는 연구와 시기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므로 이 책은 판단하지 않는다.
저축과 투자: S − I = CA
경상수지는 무역 장부이면서 나라 전체의 가계부이기도 하다. 3장의 지출 쪽 GDP 식에서 출발한다.
뜻은 이렇다. 나라 전체가 번 것보다 덜 쓰면(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남는 몫은 결국 해외로 나간다. 물건으로 팔고 받은 달러로 해외 자산을 산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국은 해외 자산이 쌓이는 나라이고, 적자국은 해외에서 빌리거나 자산을 파는 나라다. 2025년의 흑자 1,230.5억 달러는 2025년 연평균 환율(1,421.97원)로 바꾸면 약 175조원으로, 명목 GDP 약 2,677조원의 6.5% 남짓이다(이 책이 계산한 값).
이 항등식은 기사를 읽을 때 유용한 질문을 준다. 경상수지 흑자가 늘었다면 저축이 늘었나, 투자가 줄었나. 국내 투자가 부진해서 생긴 흑자라면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또 무역 적자를 관세로 줄이려는 정책이 왜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는지도 여기서 보인다. 수입이 줄어도 그 나라의 저축과 투자가 그대로라면, 환율이나 다른 수입품, 수출이 움직여 결국 같은 크기의 적자로 돌아오기 쉽다. 다만 이것은 회계의 관계이지 인과의 방향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저축과 투자가 거꾸로 무역의 변화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판
이제 장부의 네 갈래를 움직이는 힘들을 한 판에 올린다. 처음 값은 2025년이다. 반도체 가격과 세계 수요는 수출을, 유가는 수입을, 환율은 수출입과 해외여행을, 해외 배당과 이자는 본원소득을 바꾼다. 막대의 흐린 테두리는 2025년 실제 값이다.
경상수지 판: 반도체·세계 수요·환율·유가·해외 배당
판을 돌려 보면 한국 경상수지의 두 축이 드러난다. 하나는 반도체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유가다. 둘 다 한국이 정하지 못하는 세계 시장의 가격이다. 환율은 생각보다 작은 손잡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조금 늘고 수입과 해외여행이 줄지만, 그 효과는 몇 분기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고 크기도 작다. 반대로 경상수지가 환율을 움직이는 힘은 10장에서 본 것처럼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으로 바로 온다.
"나라가 1,230억 달러를 벌었다는 뜻인가"
2월 아침, 지우는 회사 메신저에 올라온 기사 제목을 노트에 옮겼다. 원료구매팀에게 경상수지는 먼 이야기 같았지만, 흑자가 크면 달러가 많이 들어오고 그러면 원화가 강해져 원료값이 싸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백정호에게 물었더니 대답 대신 질문 세 개가 돌아왔다. "언제 기준이냐, 무엇과 비교했냐, 누가 쟀냐."
지우는 표를 찾아 답을 적었다. 언제: 2025년 1~12월, 잠정치. 무엇과: 2024년(999.7억 달러)보다 23.1% 많고, 종전 최대인 2015년(1,051.2억 달러)보다 많다. 누가: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관 수출(산업통상부)과는 다른 장부다. 그리고 네 갈래를 나눠 보았다. 상품수지 1,380.7억 달러가 흑자를 거의 다 만들었고, 서비스수지는 345.2억 달러 적자, 본원소득수지는 279.2억 달러 흑자였다. 이전소득수지는 기사에서 찾지 못해 합계에서 거꾸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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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교역의 이득은 절대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기회비용의 차이)에서 나온다. 교역 가격이 두 나라의 기회비용 사이에 있을 때 두 나라 모두 혼자서는 닿지 못하는 소비에 닿는다.
- 경상수지는 상품·서비스·본원소득·이전소득 네 갈래다. 2025년 1,230.5억 달러 흑자는 상품수지(1,380.7억)가 끌고 본원소득(279.2억)이 받쳤으며, 서비스는 적자(−345.2억)였다.
- 수출 증가율은 기저(작년 숫자), 단가, 물량, 조업일수로 나눠 읽는다. 올해의 기록은 내년의 분모가 된다.
- 반도체 비중이 클수록 반도체 값 하나가 수출·경상수지·교역조건을 크게 흔든다. 교역조건은 같은 수출로 얼마나 수입할 수 있는지를 잰다.
- 작은 나라의 관세는 국내 가격을 올려 생산자와 정부에 몫을 옮기고 사중손실을 남긴다. 경상수지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S − I = CA)와 언제나 같다.
확인 퀴즈
1. A국은 1명이 쌀 6가마 또는 옷 3벌을, B국은 1명이 쌀 2가마 또는 옷 2벌을 만든다. 옳은 설명은?
2. 한국이 미국 주식에서 받은 배당금은 경상수지의 어느 갈래에 들어가는가?
3. 올해 9월 수출이 1년 전보다 80% 늘었다. 이 숫자를 다시 볼 때 가장 덜 중요한 질문은?
4. 국민저축이 국내 투자보다 GDP의 5%만큼 많은 나라에 대해 회계상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