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가 퍼지는 길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는 한 줄은 그날 오후 채권 가격을, 다음 달 은행 대출금리를, 반년 뒤 내 전세대출 이자를, 1년 뒤 소비와 집값을, 2년 뒤 물가를 건드린다. 이 장은 그 길을 하나씩 따라간 뒤 연결판 위에서 한꺼번에 움직여 본다.
- 기준금리가 시장금리·대출금리·자산 가격·환율·소비·물가로 번지는 다섯 경로를 그릴 수 있다.
- 예상된 인상과 예상 밖 인상에 시장이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가 언제, 얼마나 바뀌는지 내 대출로 계산할 수 있다.
- 금리를 올렸는데 환율이 오르거나 집값이 오르는 기사를 다른 힘과 함께 읽을 수 있다.
0.25%p는 어디로 가는가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은행들과 7일짜리 돈을 주고받을 때 쓰는 금리다(8장). 지우가 은행에서 빌린 전세대출의 금리도, 지우가 적립하는 ETF의 값도, 회사가 달러로 사는 밀가루의 원화 값도 이 금리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금리를 바꾸면 그 모두가 움직인다. 기준금리는 경제 전체의 돈값을 직접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다른 금리와 가격이 기대어 서는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이 길을 통화정책 파급 경로(Monetary policy transmission mechanism)라고 부른다. 한국은행은 경로를 다섯 갈래로 정리한다. 금리 경로, 자산 가격 경로, 환율 경로, 신용 경로, 기대 경로다. 그림 1은 그 길을 한 장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서 기억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길이 여러 갈래다. 금리를 올리면 대출 이자가 늘어 소비가 줄고(금리 경로), 주식과 집의 값이 눌려 부자가 된 느낌이 줄고(자산 가격 경로), 원화 예금의 매력이 커져 원화가 강해지고(환율 경로), 은행이 대출 심사를 조이고(신용 경로),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덜 오르겠구나" 하고 기대를 고친다(기대 경로). 둘째, 길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한국은행이 오늘 금리를 정하면서 1~2년 뒤의 물가를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첫 번째 길: 시장금리에서 내 대출금리까지
기준금리가 바뀐 날, 가장 먼저 움직이는 것은 은행끼리 하루짜리 돈을 빌려주는 콜금리(Call rate)다. 한국은행이 이 금리를 기준금리 근처에 붙잡아 두기 때문에 거의 같은 폭으로 따라간다. 그다음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국고채 금리 같은 시장금리다. 은행은 예금과 채권으로 돈을 모아 대출을 내주므로, 시장금리가 오르면 은행이 돈을 구하는 값, 곧 조달금리(Funding cost)가 오른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은 이 조달금리를 모아 만든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나 금융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정한다.
여기서 두 가지 시차가 생긴다. 코픽스는 은행들이 그달 새로 모은 돈의 평균 금리라서 한 달에 한 번, 시장금리를 몇 달에 걸쳐 따라간다. 그리고 내 대출은 계약서에 적힌 금리 재산정 주기(Reset period)가 돌아와야 새 금리로 바뀐다. 6개월 변동이면 기준금리가 오른 다음 날 내 이자가 늘지 않는다. 다음 재산정일까지는 옛 금리 그대로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기준금리 인상 폭과 "시장이 미리 예상한 정도"를 바꿔 본다. 선 세 개는 은행 창구의 신규 대출금리(시장), 국고채 3년 금리, 지우의 6개월 변동 전세대출 금리다.
기준금리에서 내 대출금리까지: 두 번의 시차
계단의 높이는 기준금리 변화보다 조금 낮게 그렸다. 은행 조달금리가 기준금리와 똑같이 움직이지 않고, 은행이 가산금리를 조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반대 방향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금리 인상기에 가계대출이 너무 빨리 늘면 금융당국이 대출을 조이라고 주문하고, 은행은 가산금리를 올려 대출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더 오르기도 한다. 기준금리를 내리는데 대출금리가 덜 내리는 기사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두 번째 길: 기대, 발표 전에 이미 움직인 값
앞의 시뮬레이터에서 '예상하지 못한 몫'을 0%로 내리면 국고채 금리가 발표일에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시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채권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금통위가 열리기 전에 이미 결정을 예상해 값에 넣어 둔다. 총재의 발언, 물가 지표, 미국의 금리, 금통위원들의 지난 회의 의사록을 보고 "다음 회의에서 올릴 확률"을 매긴다. 그래서 발표일에 움직이는 것은 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 결정과 예상의 차이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한가. 같은 0.25%p 인상이라도 모두가 예상했다면 주가와 환율은 발표일에 조용하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크게 흔들린다. 반대로 인상을 "동결"했는데 시장이 인상을 확신하고 있었다면, 동결 발표에 금리가 내리고 주가가 오른다. 기사 제목이 "금리 인상에도 증시 상승"이라면 먼저 시장이 무엇을 예상했는지 묻는다.
발표일의 반응: 결정이 아니라 예상과의 차이
중앙은행이 앞으로의 방향을 미리 말하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가 힘을 갖는 이유도 이것이다. 한국은행은 2022년부터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들의 3개월 내 금리 전망을 밝혀 왔고, 2026년 2월부터는 위원 각자의 6개월 뒤 금리 전망을 점으로 찍은 점도표를 내놓는다. 결정이 예상대로 나오면 충격이 작고, 시장은 다음 걸음을 미리 반영한다. 말이 곧 정책이 되는 셈이다(8장).
세 번째 길: 주가와 집값
주식 한 주의 값은 그 회사가 앞으로 벌어 나눠 줄 돈을 오늘의 값으로 할인해 더한 것이다. 할인에 쓰는 비율에 금리가 들어 있다. 금리가 오르면 같은 미래의 돈이 오늘 덜 가치 있고, 예금이나 채권이 주는 확실한 이자와 견줘 주식의 매력이 준다. 회사의 이자 비용이 늘고 소비가 줄어 이익 자체가 줄기도 한다. 그래서 금리 인상은 대체로 주가를 누른다. 다만 "대체로"다. 경기가 좋아 금리를 올리는 시기라면 이익이 늘어나는 힘이 할인율의 힘보다 클 수 있다.
집값도 같은 원리를 따르지만 길이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집을 대출로 사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같은 소득으로 빌릴 수 있는 돈이 줄고(DSR), 그만큼 낼 수 있는 값이 준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두 길을 나란히 놓는다.
할인율과 대출 한도: 금리 1%p가 주가와 집값을 누르는 힘
두 선 모두 금리가 낮을수록 가파르다. 금리가 1%에서 2%로 오르는 1%p가 5%에서 6%로 오르는 1%p보다 자산 가격을 더 크게 흔든다. 2020~2021년 초저금리 시기에 주가와 집값이 크게 오르고 2022년 금리가 빠르게 오르자 크게 흔들린 것을 이 모양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시기 자산 가격을 움직인 힘은 금리 말고도 많았다. 이 그래프는 금리라는 힘 하나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미는지만 보여 준다.
네 번째 길: 환율, 두 나라의 금리 차
원화 예금 금리가 오르면 같은 돈을 달러 대신 원화로 들고 있을 이유가 커진다. 외국 투자자는 한국 채권을 더 사려고 달러를 원화로 바꾸고, 그만큼 원화가 귀해져 원/달러 환율이 내린다(원화 강세). 그래서 교과서의 답은 "금리를 올리면 환율이 내린다"다.
그런데 투자자가 보는 것은 한국의 금리 하나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 금리의 차이다. 한국이 0.25%p 올리는 동안 미국이 0.75%p 올리면 차이는 오히려 벌어져 달러가 더 매력적이다. 2022년이 그랬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00%에서 3.25%까지 올렸지만 미국 연준은 0~0.25%에서 4.25~4.50%까지 더 빠르게 올렸고, 원/달러 환율은 그해 가을 1,400원을 넘었다(10장).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환율이 오른 것이다.
한국이 올리고 미국도 올리면: 금리 차와 환율
환율은 다시 물가로 돌아온다. 원화가 약해지면 같은 달러 값의 밀가루·원유·부품이 원화로 비싸지고, 그 몫이 몇 달에 걸쳐 소비자물가에 스며든다. 지우의 회사가 원가표를 다시 짜는 것도 이 길 위에서다. 금리 인상이 환율을 거쳐 물가를 누르는 힘은 미국의 금리와 세계의 불안에 따라 커지기도, 거꾸로 서기도 한다.
다섯 번째 길: 소비·투자, 그리고 가장 늦게 오는 물가
앞의 네 길은 결국 사람과 회사의 지출로 모인다. 이자가 늘어난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자산 가격이 내려 덜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계도 지갑을 닫는다. 기업은 빌려서 공장을 짓는 투자를 미룬다. 원화가 강해지면 수출이 조금 불리해진다. 수요가 줄면 기업은 값을 덜 올리고, 사람을 덜 뽑는다. 이것이 금리 인상이 물가를 낮추는 본래의 길이다. 그리고 가장 오래 걸린다.
한국은행과 해외 중앙은행의 분석은 대체로 기준금리 변화가 성장에는 1년 안팎, 물가에는 1~2년에 걸쳐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본다. 크기는 연구와 시기에 따라 다르다. 아래 그래프는 이 책의 모형으로 그린 반응이다. 크기보다 모양을 본다.
성장은 먼저, 물가는 나중에: 3년의 반응 곡선
연결판: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출·주식·집값·환율은
이제 다섯 길을 한 판 위에 올린다. 가운데 기준금리에서 출발한 신호가 시간이 흐르며 각 칸으로 번진다. 아래쪽 칸들은 2년 동안 각 숫자가 어떤 길로 움직이는지 작은 그래프로 보여 준다. 마지막 줄은 지우의 가계부다.
기준금리 연결판: 대출·주식·집값·환율·성장·물가
EC.transmit. 반응 크기와 시차는 교육용 가정이며 아래 '모형의 가정'에 밝혔다. 다른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전망이 아니다.)연결판을 몇 번 돌려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순서다. 금융시장의 가격(채권·주식·환율)이 먼저, 은행의 금리가 다음, 집값과 실물 경제가 그다음, 물가가 마지막이다. 다른 하나는 크기의 차이다. 지우의 월 이자는 기준금리 0.25%p에 3만원 남짓 늘지만, 주가는 하루에 그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오르내린다. 금리의 효과는 자산 가격에서 크고 빠르게, 가계의 현금흐름에서 작고 확실하게 나타난다.
모형의 가정과 실제의 금리 사이클
연결판의 숫자는 이 책이 고른 계수에서 나온다. 무엇을 가정했는지 표로 밝힌다. 계수는 EC.TRANSMIT에 있고 장 안의 모든 시뮬레이터가 같은 값을 쓴다.
| 경로 | 가정(1%p 인상 기준) | 시차 | 왜 이렇게 골랐나 |
|---|---|---|---|
| 국고채 3년 | 예상 밖 몫의 80%, 예상된 몫의 15% | 발표일 | 단기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기대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 |
| 변동 대출금리 | 90% 전가 | 반감 약 2개월 + 재산정 주기 | 코픽스는 월 단위로 신규 조달금리를 따라간다 |
| 주가 | 발표 즉시 −4%(예상 밖 몫), 1년간 −3% 더 | 즉시~1년 | 할인율 경로. 경기 상황에 따라 부호까지 바뀔 수 있다 |
| 집값 | 2년 뒤 −4% | 반감 약 9개월 | 대출 한도와 이자 부담. 공급·정책·기대가 더 큰 힘일 수 있다 |
| 원/달러 환율 | 예상 밖 몫 −2%, 미국 1%p 인상 +2% | 즉시, 1년 반에 걸쳐 되돌림 | 내외 금리 차.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금리 차보다 안전 선호가 앞선다 |
| GDP 수준 | 최대 −0.5% | 정점 약 15개월 | 소비·투자 감소. 가계부채 민감도로 크기 조절 |
| 물가 수준 | 최대 −0.35% + 환율 1%당 0.08% | 정점 약 24개월 | 수요 경로는 가장 늦고, 환율 경로는 몇 달 안에 온다 |
실제 금리 사이클 하나를 놓고 보자. 한국은행은 2021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기준금리를 0.50%에서 3.50%로 3%p 올렸다. 표 아래 행들의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대출금리가 크게 올랐고, 주가와 집값은 2022년에 내렸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 6.3%를 정점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환율은 미국이 더 빨리 올린 탓에 반대로 움직였고, 물가가 내려온 데에는 국제 유가의 하락도 큰 몫을 했다. 한 사이클의 모든 움직임을 금리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같은 방향의 힘이 여럿 겹칠 때 움직임이 커진다는 것을 함께 기억한다. (기준금리: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물가: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
"그래서 내 이자는 언제, 얼마나 오르나"
지우는 7월과 8월 두 번의 인상을 노트에 나란히 적었다. 7월은 2023년 1월 이후 처음 올린 인상이었고(만장일치), 8월은 2회 연속 인상이었다(7명 중 6명 찬성, 1명은 동결 의견). 삼촌 백정호의 첫 질문은 "시장은 예상했나?"였다. 지우는 발표 전 몇 주 동안 국고채 3년 금리가 이미 오르고 있었는지 ECOS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발표 전에 올랐다면 그만큼은 예상된 인상이고, 발표일의 움직임은 나머지 몫이다. 그다음 질문은 자기 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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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기준금리는 경제의 모든 금리를 직접 정하지 않는다. 시장금리·대출금리·자산 가격·환율이 기대어 서는 기준점이며, 다섯 경로(금리·자산 가격·환율·신용·기대)로 번진다.
- 경로마다 시차가 다르다. 금융시장 가격은 며칠, 대출금리는 몇 달(재산정 주기까지), 성장은 1년 안팎, 물가는 1~2년에 걸쳐 가장 크게 반응한다.
- 발표일에 시장이 반응하는 것은 결정이 아니라 예상과의 차이다. 예상된 인상은 조용하고, 예상 밖의 동결은 완화처럼 작용한다.
- 금리 인상은 대체로 주가와 집값을 누르고, 금리가 낮을 때 같은 1%p의 힘이 더 크다. 집값에는 할인율에 더해 대출 한도의 길이 있다.
- 환율은 한국 금리 하나가 아니라 한·미 금리 차와 세계의 위험 회피로 움직인다. 한국이 올려도 미국이 더 올리면 원화는 약해질 수 있다.
확인 퀴즈
1. 6개월 변동금리 전세대출을 쓰는 사람이 있다. 재산정일 바로 다음 날 기준금리가 0.25%p 올랐다. 이 사람의 대출 이자는 언제 늘어나는가?
2. 시장이 인상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는데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발표 직후 국고채 금리와 주가는 대체로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p 올린 같은 기간에 미국 연준이 0.75%p를 올렸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원/달러 환율에 대해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4.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